Dacota

Mark

「지자요수,인자요산(슬기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타이동은 산을 기대고 물을 가까이 한 곳으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어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선망하는 곳이기도 하다.근래 타이동 여행을 한 인원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또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가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경험하기 원한다.

타이완에 온 지 5년 남짓 된 다코타는 원래 ‘장미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 살았다.‘미국 대부분의 지역은 매우 지루하죠.하지만 제 고향은 정말 아름답답니다.’고향을 소개하는 다코타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그에게 타이동과 고향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예를 들면,수려한 풍경,깨끗한 공기,야외 활동에 매우 적합한 환경과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했다. 비록 그림과 같은 풍경의 포틀랜드에 산다고 하더라도 동양문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그 당시 저에게는 이미 많은 타이완 친구들이 있었죠.그래서 중국어 문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타이완을 선택했어요.그 당시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소원이었지요!’라고 다코타는 말했다.

Mark was teaching a student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약간의 중국어를 배운 후 바로 타이완으로 날아왔다.그런 후 그의 영어 강습 생애를 시작했다.‘처음 타이완에 도착했을 때는 지롱에서 살았어요.그곳에서 맛있는 또우화를 파는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어요. 매일 그 분과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중국어를 배웠지요.’ 다코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당시 주위 친구들이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중국어로만 말하도록 연습했다고 한다.그리고 그는 등산을 좋아하는 애호가들과 함께 등산 코스를 계획하며 조금씩 중국어를 익혔다.자연을 좋아하는 다코타는 심지어 타이루거국가공원의 해설 봉사자로 자원하기도 했다.전문적인 훈련 과정과 시험을 통과해 자원봉사자 자격을 취득했다.그는 ‘저도 이제 타이루거국가공원의 외국어 자원봉사자 대표랍니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지롱에서 잠시 거주하는 동안 다코타는 색다른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그래서 도시에서 화동지역으로 이사했다.먼저 도착한 곳은 화련이었고 이어서 생활 템포가 더욱 느린 타이동으로 이사했다.‘타이동의 생활은 한가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워요.게다가 타이동의 산들은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어 정말 재미있답니다!’ 다코타는 여가 시간에 종종 혼자서나 타이동의 등산 애호가들을 불러 모아 등산하는 것을 좋아했다.비싼 등산 장비들을 등에 메고 화동지역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을 정복했다.비록 바깥 세상은 혼란스러워도 등산 과정에서 그는 더욱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주간에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도 깨끗이 씻어버릴 수 있었다.

다코타는 타이동의 아낌없는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즐거움 외에 동부의 원주민 문화에도 대단한 관심이 있었다.‘타이동과 화련은 달라요.타이동을 다니다 보면 열정적인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는데 원주민 부락을 특별히 찾아갈 필요가 없답니다!’ 등산 일정이 없을 때에는 원주민 친구들을 만나거나 심지어 부락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성격 때문에 현지인들과 쉽게 하나가 되고 함께 즐길 수 있었다.

Mark was teaching a student

현재 다코타는 타이동현정부에서 외국인 컨설턴트를 담당하고 있다.현정부에서 번역을 돕고 외국인 방문객을 접대하는 등의 일을 한다.또한 타이동을 국제적인 영어화 도시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그가 타이동에서 거주한 근 반년간의 관찰에 의하면 타이동을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휴가 성지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한다.타이동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필수 조건을 가지고 있고 치안도 양호하기 때문에 잠재력이 높은 도시라고 했다.다코타는 타이동을 향해 높은 기대를 갖고는 ‘타이동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은 주민들이 함께 유지해 나가야만 해요.모두 함께 노력해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싶어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다코타가 추천하는 모험지

리버 트레킹:쌍슈시,쟈루시

온천:타오린온천,리쏭슈온천,루루온천

등산:산차산,쟈밍산,관산,베이난 주봉우리,두란산,메이나이텐산,펀펀산

Adam M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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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한 나라에서만 생활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그것은 자신의 성장환경과 확연히 다른 곳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과도 같다.

현재 동하이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담당하고 있는 아담 매츠는 풀브라이트(Fulbright)기금회 협조로 초청한 영어교사이자 조교이다. 1999년에 대만을 처음 방문했던 아담은 타이완과의 알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에 학교를 갓 졸업해 일자리를 구하던 저는 한국,타이완,중국 세 나라 중에서 타이완을 선택했지요.’,‘한국과 제 고향인 시애틀은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에 전혀 놀랍거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그래서 타이완을 선택했어요.’라고 아담은 말했다.

타이동 외에도 타이종,신주 등의 도시에서 거주했던 그가 소박한 타이동에 처음 왔을 때, 아담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 시골이라는 느낌이었다.2006년 타이동에 왔을 때 심지어 타이동의 많은 도로표지판에는 영어가 표시되지 않았다.‘중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여행을 하는데 굉장히 불편했어요.’하지만 다행히도 아담은 동하이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수강했기 때문에 언어소통을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중국어 읽기와 쓰기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현지 생활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저는 달리기를 좋아해서 마라톤에 참가한 적도 몇 번 있어요.’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타이동에 사는 것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전에는 서부에서 개최하는 마라톤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비록 재미있기는 했지만 약간의 초미세먼지(PM2.5)를 마셔야만 했죠.’유머 역시 그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이 유머 덕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아담은 타이완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2011년과 2013년 사이에는 타이동의 아이들을 데리고 마이크로소프트웨어회사의 「글로벌 파트너 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글로벌교육포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이것은 낙후 지역의 아이들도 뛰어난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아이들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타이동은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입니다.’

아담은 휴가의 성지인 하와이를 들어 비교했다.‘하와이의 소비 가격은 너무 높습니다.인구 또한 너무 많고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하지만 타이동은 다르지요.산이나 바다가 보고 싶다면 많은 이동시간이 필요하지 않기에 관광 여행을 개발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입니다.’정확하게 자신의 관점을 얘기하는 그를 보며 처음에는 그가 정말 시골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아름답고 깊이 있게 체험해 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느끼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동을 즐기는 습관 외에도 아담은 ‘타이완 스타일,서양과 동양의 조합’ 이라는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했다.블로그에는 그가 타이동에서 생활하는 이모저모가 기록되어 있는데 글자마다 감정이 풍부하고 내용 중에는 타이동 현지의 여행 자료들도 첨가되어 있다.중영문의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타이동을 키워드로 검색하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그의 블로그에 접속하여 타이동 관광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을 물어봤다. 그를 ‘타이동 박사’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심지어는 관광과는 관계없는 질문들도 많이 해서 더욱 흥미로웠다.

‘만일 타이동이 국제화를 향해 전진한다면 영어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아담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중국어가 매우 유창한 외국인에게 타이동의 생활은 매우 편했다. 하지만 아담 주위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었다.예를 들어 영어만 할 줄 아는 친구가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할 때면 메뉴를 보는 것이 마치 전문서적을 읽는 것처럼 어려웠다.비록 타이동은 그에게 휴가 성지보다도 더 멋진 곳이 되었지만 그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타이동은 얼마나 재미있는 곳일까요?’라며 적극적인 건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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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있다면 아담의 블로그를 방문하여 타이동에서 일어난 그의 멋진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http://acidolphilus.blogspot.tw/

야수(YaSu) 옥-펑쉐캉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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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화련현에 가까운 푸리향은 북동쪽으로는 타이동현 청공진 동허향과 맞닿아 있다.유명한 동허만두 외에도 근래 타이동에서 개최한 국제서핑경기가 일으킨 서핑 열풍으로 동허는 서퍼들이 가장 많이 도전하며 오래 머무르는 지역이 되었다.

일본에서 온 펑쉐캉홍(야수)은 3년 전 친구를 따라 동허에 서핑을 하러 온 후로는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타이동에 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동허향에 일식 주점을 연 그는 파도와 함께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며 동부생활을 만끽했다.‘최근 3~4년간 타이동의 서핑은 아주 유명했어요. 잡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지요.!’일본에도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일본의 겨울 바다는 영하의 온도로 떨어져 너무 춥기 때문에 서퍼들은 일본에서 거리가 가장 가깝고 온도가 따뜻한 서핑 지역인 타이동 동허를 고려하게 된다고 야수는 말했다.

 

일본에서 요식업에 종사한 적이 있고 일식 주점에서 열심히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동허에서도 일식 주점을 운영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겨울에는 동허 바닷가에 있는 99%의 서퍼들이 모두 일본인이예요!’라며 겨울에는 굉장히 많은 일본인 서퍼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야수는 밝혔다.그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주인이나 일식 창작 요리를 제공하는 주점은 일본 여행객에게 친절함과 안정감을 준답니다.’라고 강조했다. 매년 10월부터 동북계절풍이 불기 시작해 이듬 해의 3~4월까지 불기 때문에 많은 일본 서퍼들이 끊임없이 동허를 방문한다.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일본어 사이트와 블로그 마케팅을 통해 겨울 밤의 일식 주점뿐만 아니라 낮에는 현지 가이드 및 서핑코치도 겸하고 있다. 일본 관광객들에게 가장 좋은 서핑 장소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관광 명소도 소개해 준다. 관광객들은 하루 동안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돌아온 후 저녁이 되면 다시 야수의 일식 주점에서 맛있는 무메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제가 사용하는 식재료들은 모두 매일 아침 청공항에서 사온 것들입니다.저는 냉동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거든요.오히려 현지의 특별한 해물들을 사용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야수는 이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가방에서 그 날 아침 얻은 전리품들을 꺼냈다.‘이건 매우 귀하고 드문 쏨뱅이로 가시에 위험한 신경독이 있는데 육질은 콜라겐이 풍부하고 아주 맛이 있어요. 생선은 정말 못생길수록 더 맛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한 눈에 봐도 모양이 이상하고 못생긴 생선이라 미식과는 연결시키기 어려웠다.하지만 야수는 이 생선으로 솜씨를 제대로 발휘해 보려는 듯 대단한 각오가 엿보였다.이 특별한 현지 요리를 오늘 저녁 식사하러 온 미식가에게 대접할 것이다.

파도가 없는 계절에 일본 친구가 방문하면 야수는 그들과 함께 온천에 갔다.‘최근 일본 프로그램에서 리송온천을 보도했어요.그래서 일본에서도 유명한 온천이랍니다.’타이동은 겨울에만 서핑이 적합하기 때문에 파도가 잔잔한 여름이면 일본 서퍼들은 심지어 태풍을 따라다니기도 한다고 했다.‘태풍이 타이완에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태풍을 따라서 서핑을 한답니다.큰 파도를 타는 것은 매우 짜릿하지만 그래도 안전이 우선이지요!’야수는 웃으며 말했다.

타이동에서 거주한 시간 동안 야수는 일본 서퍼들의 습관을 모두 숙달했다.하지만 교통조건이 수많은 서퍼들의 타이동 서핑여행을 매우 어렵게 했다.‘타이동을 방문하는 일본인들은 먼저 인터넷을 통해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블로그의 글들과 경험들을 검색합니다.어떤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오거나 또는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하지요.’버스는 통행 차량이 많지 않고 게다가 소형버스는 서핑보드를 실을 수 없는데, 버스 통행표만 봐서는 어느 것이 대형버스고 어느 것이 소형버스인지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버스를 기다려도 탈 수 없는 상황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일본에서 타이동으로 오려면 반드시 송산공항이나 타오위엔공항을 거쳐야 하며 국내 항공으로 갈아 탈 경우에는 서핑보드를 화물로 운송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하지만 기차는 서핑보드를 실을 수 없어요.…’라며 야수는 무력감을 토로했다.만약 일본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이 있거나 기차도 서핑보드를 실을 수 있다면 교통이 더 편리해져 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희망했다.하지만 현재의 제약적인 조건 속에서도 많은 일본 서퍼들을 유치시켰기 때문에 야수는 자신감을 가졌다.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일본인들에게 타이동의 아름다운 해양을 알려서 서핑성지 타이동의 명예를 계속해서 전파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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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ron H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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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동부는 풍부한 지리환경과 탁 트인 시야를 가졌고 계절의 변화와 밤낮의 교차 속에서 수만가지의 면모를 보여준다. 타이동을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마치 꿈의 여행처럼 느껴지며 타이동을 탐험하는 과정 중에서 삶의 새로운 위치와 방향도 찾게 된다.

카메론 핸슨(Cameron Hanson)은 예술 문화가 발달한 시애틀에서 자랐다. 대학교 때는 예술을 전공했고 여행도 좋아했다.30여 개 나라를 여행했지만 아시아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당시에 어느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했죠. 타이완의 다양한 문화와 섬나라라는 점이 제가 첫번째로 선택한 이유였죠. 그 다음은 일본,한국,베트남,홍콩 등의 순서이고요…’라고 캠은 말했다.하지만 뜻밖에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타이완 여행에서 타이동에 도착한 후 아시아의 첫 방문국이 곧 마지막 방문국이 된 것이다.캠은 과감하게 타이동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시애틀의 생활은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았죠.오직 일과 스케줄 뿐이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해야 했어요.이 같은 생활은 저를 질식하게 만들었어요.’캠은 타이동에 오기 전의 생활을 이와 같이 묘사했다.타이동에 온 후 그는 운명의 동반자를 만났고 과거의 생활 방식은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저는 타이동에서 제가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비록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미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살고 싶었죠!’ 캠은 나에게 지금의 그는 커피숍 사장이자 프리랜서 사진 작가이며 한 아이의 아빠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여러 역할을 하고 있는 캠은 ‘비록 바쁘지만 저는 아주 만족해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해가 뜨는 것과는 달리 매일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지만 언제나 어제와 다른 오늘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캠은 용기를 가지고 기계처럼 똑같은 일상을 벗어 버리고 안전지대를 넘어서 인생을 바꾸는 여정에 발을 디뎠다.‘처음 타이동에 왔을 때 저는 중국어를 잘 못했어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죠.한 번은 저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저에게 맥주를 대접하며 점심식사도 한 테이블에서 먹자고 제안했죠.누군가가 말했었죠.따뜻한 기후 사람들은 마음씨도 따뜻하다고요. 저는 이 말이 진짜라고 진심으로 믿습니다.’타이동 사람들의 마음씨는 어쩌면 따뜻한 기후와 조금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인터뷰는 눈부신 햇빛이 내려 쬐는 오후에 이루어졌고 캠에게 타이동에서 만났던 여러가지 훈훈한 추억들을 기억나게 했다.‘한 번은 소중한 카메라를 한 칵테일바에 두고 온 적이 있어요.4일 후 제가 다시 그곳에 갔을 때 카메라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어요.가게 주인이 제가 다시 찾으러 갈 때까지 잘 보관해 두었답니다.’만일 카메라를 다른 지방에서 잃어버렸다면 다시는 찾지 못했을 것이라며 타지에서 온 여행객에게 있어 여행지의 안전성은 굉장히 중요하고 타이동은 그를 안심하게 하는 곳이라고 캠은 말했다.‘타이동사람들은 굉장히 우호적이에요.이점은 제가 타이동에 왔을 때 처음 받은 인상이기도 하답니다.’비록 중국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의 소개로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언어의 장벽을 넘어 현지 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하게 되었다.그리고 이것은 그의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저는 시애틀에서 평범한 생활을 했어요.하지만 현재의 생활은 더욱 유연하고 다채로우며 보람이 있답니다.’ 캠은 정성들여 운영하는 동해안 고속도로의 ‘월광해커피숍’ 외에도 한가할 때는 산과 바다를 다니며 타이동만의 아름다움과 독특함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포착하는 것이 생활 속의 빼 놓을 수 없는 원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여러가지 다른 각도를 통해 언제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놀라움을 발견하고는 했다.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드넓은 땅,진한 인정미가 일만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시애틀에서 타이동까지 사랑의 인연을 맺어 주었고 캠의 인생 또한 뒤바꿔 놓았다.비록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가지면 행복은 계속되고 기쁨 또한 함께 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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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Pai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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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타이동에 수일 동안 계속 내린 비로 그야말로 밝은 태양이 그리울 즈음 실내 가득한 우울함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었다. 고위도 지역 국가에서 살던 단 파이에로(Dan Paiero)에게 동부의 불같이 타오르는 여름은 큰 도전이었지만 타이동을 향한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는 타이동에서 7년을 살았어요.그 전에는 화련에서 살았지요.하지만 저는 화련보다 타이동을 더 좋아합니다.왜냐하면 화련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에게 비좁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마치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죠…’라고 단은 말했다.어려서부터 광활하고 인구가 희소한 캐나다에서 자란 그는 타이동에 거주한 후에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고 천천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이동에서 거주한 지 몇 년후 저는 이곳에서 살기로 결심했지요.이곳이 바로 나의 새 고향이라고 말이죠!’ 타이동에서 보낸 짧지 않은 이 시간 동안 단은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기도 했고,여가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원주민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타이동의 산과 구릉 지대,짙푸른 바다가 그로 이곳을 깊이 사랑하게 만들었다.

‘타이동 사람들은 아주 친절해요.그리고 알고 지낼 때도 어렵지 않고 편안하답니다.’ 단은 일본 여행에서 만났던 일본인들은 모두 비교적 엄숙하고 긴장해 있었다고 했다.일본에서 돌아온 후 그는 타이베이와 화련을 거치며 점점 편안해 지는 느낌이 들었고 타이동에 와서야 완전히 편안해졌다고 했다.타이동만의 특별한 인정에 대해 단이 받은 인상은 특별히 더 깊은 듯 했다.사진 촬영을 매우 좋아하는 그는 자주 길가에서 카메라를 매고 사진을 찍었다.십중팔구는 열정적인 주민들이 먼저 질문을 해왔다.‘도움이 필요하세요?’,‘길을 알려 드릴까요?’ 그를 자주 관광객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도무지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웃으면서 5년 전의 일들을 얘기했다.그 당시 그는 따우 부근을 운전하고 있었다.몸에 지닌 것은 카메라뿐이었고 신분증은 갖고 있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그를 멈춰 세웠다.‘그 때 저는 속으로 큰일났네,어떻게 신분증 하나 갖고 있는 게 없지?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경찰이 걸어 와서는 단에게 운전 속도가 너무 빨랐다고 했다.그리고는 경찰차로 돌아 가더니 썬크림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햇빛이 너무 강해요.이 썬크림은 일광화상을 막아 준답니다.’라고 단에게 말했다.그 당시 단은 너무나 감동했다.‘아마도 이런 경찰은 전 세계 다른 어느 곳에도 없을 거예요!’ 단은 타이동 사람들은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단순히 남을 돕고 싶어 하며 이 점은 타이동의 가장 소중한 특색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단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타이동 원주민과 민속 특색을 색다른 관점에서 나타내었다.‘저는 부락 풍년제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어요.대부분은 옆에서 감상하거나 사진 촬영을 했는데,한 번은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 적이 있지요.그때서야 저는 풍년제에 내함된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관광객의 입장이 아닌 참가자로서 부락 행사에 참여했을 때에야 그 축제가 원주민들에게 있어 얼마나 신성하고 중요한 지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한단은 타이동의 또 다른 유이무이한 캐릭터로 저는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매년 원소절마다 특별히 한단이 폭죽을 맞는 진귀한 장면들을 촬영했다.‘저에게 있어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움이지만 사진으로는 이야기할 수 있어요.그 속에는 연기와 폭발,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놀라움이 있어요…’ 단은 대량의 사진들을 모은 후 한단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출간했다.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타이동 민속 특색을 더 많은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단은 이렇게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타이동의 특색들을 얘기한 후 근 7년간에 있었던 타이동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칭찬했다.더 많은 외국인들이 타이동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수 있도록 타이동 지역의 영어개발은 해마다 나아졌다.그는 원주민 풍년제 정보도 영어로 제공될 수 있다면 원주민 문화에 관심있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저는 타이동에서 아주 행복해요.오랜 시간과 열린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타이동의 매력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단은 말했다.비록 생활 속에서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랑과 희망을 가진다면 타이동에서의 하루 하루는 사람들의 마음에 만족을 줄 것이다.

Pete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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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역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소위 말해 인기 상점이 있기 마련이다.타이동에서는 「피자 아저씨」라는 피자 전문점이 바로 네티즌들에게 계속해서 추천 및 보도되는 타이동의 맛집 중 하나이다.

피자 아저씨를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확연한 어르신을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건장한 남성이 나타났다.원래 약속했던 시간보다 몇 분 늦게 나타난 그는 미안한 어투로 ‘아이를 동허에 있는 학교까지 데려다 주어야 해서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부드럽고 온순한 말투에 특별히 환한 미소를 지닌 인상은 도무지 아저씨라는 이미지와는 연결시키기 힘들었다.

1999년 타이완에 온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후였고 대학 시절 주위의 친구들이 모두 두세 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는 그도 제2외국어를 배우고 싶어졌다.그래서 타이완에 와서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정했다. ‘타이완은 열대섬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는 것 외에 서핑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의 대답을 통해 피트(Pete)가 서핑에 매우 깊은 관심이 있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좌충우돌이긴 했지만 뜻밖에도 이런 생각만을 가지고 동해안의 서핑 성지에 거주하게 되었다.

처음 타이완에 도착했을 때 피트(Pete)는 먼저 타이종에 거주했다.한 번은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로 대만 일주를 했다. 타이동을 지나며 아름다운 해안선, 장엄한 산들을 바라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 타이동에 거주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물어보니 사실은 이곳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트(Pete)의 아내는 당시에 그와 같은 영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 계기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고 아내를 따라 타이동에 거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 시절 전공이 예술이었기 때문에 피자가게 벽에 걸려 있는 몇 폭의 그림이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타이완에서 거주하는 동안 피트(Pete)는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졸업 후 타이동으로 돌아온 그는 타이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당시에 적당한 자리가 없었다. ‘일자리가 없다면 먼저 화랑을 열자!그리고는 화랑 안에서 피자를 굽는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 ‘결과는 예상 밖으로 피자가 그림보다 더 잘 팔렸어요!’ 피트(Pete)는 이 말을 마친 후 참지 못하고 웃음을 지었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이 풀려갔기 때문에 인생은 정말 신기하다고 느꼈다.그의 피자는 날이 갈수록 인기를 끌었고 점점 더 유명해졌다.

 

사실은 개업 시절 가장 큰 위기를 한 번 겪었었다.잘못된 의사소통 때문에 고객이 오해를 한 것이다.이 사건으로 국내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보통은 고객이 포장 주문을 하면 우리는 피자를 먼저 준비한 후 고객이 도착하면 바로 오븐에 굽는데, 약3~5분이면 바로 완성되죠.하지만 그 때는 정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오해가 생겼어요.’ 피트(Pete)는 당시의 사건을 회상하며 피자 먹을 때의 식감과 온도를 배려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고객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면 이런 상황도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를 응원했다. 어떤 사람은 가게 앞을 지나다가, 혹은 특별히 찾아 와서 응원의 말을 건넸다. 이것이 바로 타이동 사람들의 정이었다! 바로 이러한 힘이 그 시절 피트(Pete)를 유지시켜 주었고 계속해서 피자 애호가들에게 맛있는 피자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타이동에서의 10여 년의 시간 동안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그의 가게가 성공한 것을 보고 타이동에서 장사를 하고 싶어 했다.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번번히 그에게 찾아와 의견을 묻고는 했다.‘타이동에 외국인 사업자를 위한 영어 컨설팅 카운터가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그의 이러한 건의는 타이동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타이동에 뿌리를 내려 다양한 문화의 융합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타이동에 더 많은 활기를 불어넣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Flight Café- 복래동커피숍(fu ku na ga mi chi 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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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숙명이든 아니면 하늘에서 정해온 운명이든지, 어떤 행위과 과정속에서 보면 인생은 몽롱한 퍼즐 같다. 늘 용감하게 경험과 모험도 해 보고 그 과거들를 통해 목표들이 점점 뚜렷해 진다. 「저는 창업하기 전에 이미 Flight Café 라는 이름이 머리속 안에 생겼어요! 」고운 소리에 달콤 한 미소까지, fukuna gamichiyo 씨는 옛날 적 꿈의 역정이 떠올랐다, 타이배이에서 5년 동안 일 한후에,아버지께서 대만섬을 일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타이동을 지나가며 경과 한 후로 부터, 타이동을 좋아하게 돼었다, 기회가 있으면 꼭 타이동에 한 번 가 보라 하며fukuna gamichiyo 씨에게 말씀 하셨다, 그러자, 타이동 두 세 번 방문하며 관광을 한 후에. 타이베이에 있는 일을 그만두고 타이동으로 머물기 시작했다.

Flight Café 커피숍 장식은 깔끔하고 간단한 분위기, 개성과 따뜻 한 일본 zakka풍격, 점 주인과 알 맞는 호응, fukuna 씨는 옛날 적 꿈을 이루었다, 당연히 그 과정 중에서 어려우 경우도 있었다, 「니포터 큰 태풍때문에 커피숍이 많이 피해 봤어고, 그래서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 왔어요! 」 강한 태풍 때문에fukuna 씨는 친구들과 같이 알맞는 곳을 찾았고. Flight Café 커피숍을 재생하게 만들어, 커피하고 우리를 좋아하는 손님들에게 열심히 제공 하겠다고 결심하며「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힘든 일이라도 즐겁습니다.」일본 사람의 세심, 냉정한 성격, fukuna 씨에게서 그런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fukuna 씨는 혼자 타이동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그런 난관적으로 생각 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타이동으로 이사온 외국인 사람들 중에서,일본 사람들은 많이 없기 때문에 ,fukuna 씨는 타이동에 일본 친구들이 별로 없습니다. 커피숍이 휴일 할 때는 집에서 수공 비누를 만들거나 가게에서 요리 연구를 합니다;「일본 친구들이 올 때, 산이든지 바다든지, 어디를 좋아하면, 어디 데고갈 수 있어요! ! 예를 들자면 바닷가 에서 커피 마시고 바다 구경 하려면 친구들하고 금준(金樽)에 가요, 또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라면 도리(都歷)에 추첨 하죠~ 멋진 바다를 구경하고 싶을 때는 삼선대(三仙台)도 추첨하고요 !」 타이동에서 일본 친구들에게만 추첨 뿐만이 아니라fukuna 씨도 원주민 부락에 가서 풍년절도 참가 해 봤어요, 「저는 그기에 있는 원주민 경축을 아주 좋아해요,그 원주민이 입는 옷도 너무 마음에 들고 흥미 있어요. 」갑자기 생각난 fukuna 씨는 또 말했어요. 「우리 아빠는 낙시를 좋아하셨서 혼자서 버스를 타고 화렌(花蓮) 、타이동(台東)에 간 적도 있어요, 아버지는 여태까지 생선 한 마리 도 잡힌적은 없지만.. 」말 하면서 웃는」fukuna 씨, 이런 것도 평범한 타이동 일상 입니다.

「타이동은 사실 우리 일본 고향하고도 비슷해요, 어떤 사람은 부끄럽기도 하고, 열정 적인 사람들도 있고, 저는 특별히 타이동에 더 많은 특상품과 미식 상품이 있어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일본에 가끔씩 갈때 기념품이나 선물해도 되니까요. 」 가끔은 일본에 돌아가는 생각이 있지만 도쿄(東京)에 살 생각은 없고, 반대로fukuna 씨는 일본 친구에게 타이동을 추첨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이 깨끗한 토지에 여기를 아끼고 자연의 경관도 유지하며 좋겠고, 이런 자연 재산들이 계속 발전 하길를, 부모님들의 지지에서 fukuna 씨는 결국 타이동에서 자기의 꿈을 이루어 지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많이 좋아하는 fukuna 씨는 혼자서 일상 생활을 하며, 예쁜 환경에서 오래동안 살 수 있고 자기의 꿈을 이루을 수 있다 는걸 fukuna 씨가 타이동에서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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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P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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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ness is the meaning and the purpose of life, the whole aim and end of human existence. —Aristotle”

고대 그리스 철학가:「 행복감은 인생의 의미와 큰 목적이다, 사람 존제의 최종 목표다.」-아리스토텔레스, 그런 전연의 행복감은 그 개인의 의념으로만 있어 내외로 형명하여 현저히 평범 생활중에 드러나고 있다.

미국 조지아 주에서 출생 한Jeff Pike, 하와이에서 공부를 가르쳤어고, 활동등 이벤트를 참가 한 덕분에 대만에서 온 친구들를 만나게 되었다, 또 한 다른 아시아 모험 여행이 시작되어, 태국、캄보디아、베트남부터 지금은 대만 타이둥까지 왔다,나는 그 사람에게서 간단하고 행복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영향 주는 과정에서도 나도 몰르게 즐겁고 유쾌한 것을 감염 됐다.

처음에Jeff를 만난 날짜는 2016년 11월 이였다,어느 찬란한 햇빛과 오후 현장공관에서 개최한open mic외국인 음악회에서 만났다, 꽃무늬 머리 스카프 히피스타일에다가, 밝은 미소와 목피리까지 진짜 그 인상을 여태까지 까먹을 수 없었다.

「저에게는 대만 타이둥과 하와이의 느낌이 똑 같아요,아주 시원하고 편안해서, 옛날 거기에서 살았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Jeff 는 하와이의 지도 그림이 있는 기념컵을 들으면서 그전에 살았던 작은 카우아이섬을 찍었다. (Kauai섬: 귀여운 섬이라고도 한다), 거기에 있는 산맥은 바다까지 연결 되있다고 말 했다, 특히 타이둥 바다 연해 풍경과 동강 연못 풍경이 카우아이 섬하고 경치가 비슷하다고 얘기 했다. 타이둥의 산봉은 매력적이고 바다 풍경도 넓으면서 공기까지가 시원해서, 자주 하와이에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Jeff 는 여전히 타이둥 교육 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립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쳤어고, 지금은 동해 중학교와 베이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타이둥 아이들은 귀여워요, 반에 성적은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저는 여기의 생활을 좋아해요.」 Jeff 는 웃으면서 말 했다, 타이둥에서 6년 동안 살았지만, 중국어는 한 글짜도 모르고 대화도 잘 못 해요, 그래서 학생들은 반드시 영어로 대화 해야 되요, 영어 실력도 늘어지면서 도움이 되지요. 금년 초에도Jeff 가 다른 외국 선생님들 7명에서 야외 영어 캠프를 행사 했어요, 아이들과 2박3일의 침윤식(immersion) 체험 미식 캠프를 마지하고, 아이들에게 자연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과 이런 이벤트의 대한 행사는 시간과 신경이 많이 있지만 아이들하고도 만난 것도 행복하고 귀중한 보물입니다. Jeff는 다이둥 외에 생활 기능이 높은 타이페이과 가우슝에서도 잠깐 살았지만, 타이둥에만 있는 도특한 풍경과 깨끗한 공기는 돈으로도 바꿀 수 없어, Jeff는 이렇게 단순한 생활을 더 좋아합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두란 제당 공장에 있는 술 카페에도 가보고 얘기도 나누고, 아들하고 채육장에서 축구도 하며, 가끔은 철꽃촌에서 목피리도 부르고 북도 치면서 생활 하며, 그렇게 생활의 변화는 많지 않지만, 하지만 생활은 안정적이고 착실하다.

Forest Park Lake swim,

Biking beside the ocean,

Home sweet home Taitung.

—Jeff Pike

이 간단하고 짧은 시사는Jeff가 타이둥의 평범하고 행복 한 것을 충분히 설명 했다, 그건 바로 “집”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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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아이섬 자료:카우아이섬(영어: Kauai, 하와이언어,귀여운섬이라고도 한다) 태병양 중부 하와이 오아후 섬에 이어 하와이 제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카우아이 섬(Kauaʻi)은 면적 1,430.5km2이다. 인구58,303 명(2000년도 통계)카우아이섬은 화산의 섬이다,섬에서 최고 높은 고점은Kawaikini(해발1598 미터), 두 번째 높이은Mount Waiʻaleʻale (해발 1570 미터). 카우아이섬은 와호섬 서북쪽에 있다, 두 섬에 거리는 170 km 되는 카우아이 해협이다. 카우아이섬은 나머지 막지막으로 하와이 왕국 섬으로 귀하 했다, 역사적으로 수령은 1810년까지 독립 왕국으로 남아 있었던 카우아이는 카우무알리아 국왕이 전사한 후에는 비로소 하와이의 카메하메하 1세 국왕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귀여운 섬은 하와이 몇개 큰 섬 중에서 최고 북쪽에 있다, 또한 최고로 오래 된 섬이다. 옛날 최초 신이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는 걸을 전해져있다.여기에 있는 섬은 「꽃원도섬」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은 카우아이섬이 무성한 자물들과 신비러운 자연 풍경이 있다고 전해져있다,이 야외의 운동은 밖에와는 결주 할 수 없는 표연으로 경치가 좋다, 긋가죽배kayak 가 위대한 화산 현애 벼랑 Na Pali 해안을 지나갔어고, 말로 공원을 지나가든지, 헬리콥터로 봐도 경치가 놀라는 정도로 예쁩니다. 어떤 방식으로 카우아이섬을 유람을 해도, 아주 다른 감동과 도특한 자연 생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카우아이섬은 신비러운 큰 농장과 융합되어 있다, 사탕 수수 밭, 열대 우림, 최초 원시 모래 사주와 해안 현애. 하와이군도섬에서 최고 고로 오래 됐다.

Fede - 해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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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매력을 느낀 첫 번째는 바람이다.” Fede는 확고하게 말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타이둥에 머무르는 매력의 이유는 새파란 산들과, 순수하고 깨끗한 해양, 아름다운 풍경, 및 사람의 따뜻한 정서 등등에 불과하지만 타이둥의 북동계절풍 때문에 사는 사람은 Fede이 제일 첫 번째 사람이다.

인터넷에서 상당히 유명한 두란해각카페가 있다. 현재 Fede가 운영을 하고 있으며, 금발머리의 그가 책임을 짊어지고 가게 안을 드나들지만 사람들은 Fede를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고, 1살 때 스페인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내 국적은 이탈리아이고 타이둥에 온지 이미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며 Fede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어디 나라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정확히 어렵다. 그는 첫번째로 방문했을 때는 그저 잠시 머물다가 갔지만 두번째 다시 방문하고 3개월 동안 두란에 있는 펜션에서 아르바이트 이후에 여기에 남아 이 곳을 발전시키기로 결심을 했다. 중국어와 해각카페 경영이 매우 유창하고 생동감이 넘쳐 마치 이미 타이둥사람 같았다.

“제가 하는 일은 여름에 하는 일입니다. 이전에 스페인, 뉴질랜드, 호주 등 나라들 간에 계속 옮겨다녔어요.”라고 언급하면서 과거 여러 나라에서 여행한 경험은 모두가 부러워한 인생 경험이었다고 Fede는 말했지만 일을 한지 5년 후에 그의 일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발전된 해변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이둥에 와서 든 생각이 동해안의 해변은 모두 비어있었다. 소화(蘇花)도로와 화동(花東)도로를 걷는데 수상활동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볼 수가 없었다. 해안과 산 모두 예뻤다. 그래서 든 생각이 여기와서 도전해봐야겠다!”라며 그가 대동에 처음 왔을 때의 두근거림을 회상했었고, 각 나라를 돌아다니던 Fede는 드디어 소속감을 느꼈고, 타이둥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Fede의 처음 목표는 카페를 차리는 것이 아니었고 타이둥 해변지역의 수상활동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대만의 상황은 모든 사람들이 먹는 걸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무서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요리를 먹지만 수상활동에는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다.”라며 자신이 많은 시간 동안 관찰한 후 내린 결론이었다. 이어서 친구의 소개를 통해 Feng형을 만났고 카페를 시작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타이둥에서 사는 것에 대한 꿈이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Fede는 또한 “Feng형은 매우 전설적인 사람이다. 형을 만났기 때문에 두사람의 경영이론이 매우 일치하다는 것을 발견했었고, 형의 도움 덕분에 해각카페가 무에서 유를 창조되었고, 지금까지 인파가 끊임이 없다. 카페운영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매우 많다!”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처음 친구들이 그가 현재의 자리에서 카페를 열었다고 들었을 때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고, 동시에 그에게 두란 대부분의 식당은 모두 큰 길가 주변에 열고, 해각카페의 자리는 매우 외곽에 떨어져 있다고 알려줬다. 그는 “나는 광고를 하지 않았고, 막 시작했을 때 왔던 손님이 친구에게 소개 시켜주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또한 길을 잃어서 오고, 스스로 가게에 온 사람들이며, 나중에 TV프로그램에서 촬영을 왔고, 장사는 점점 나아졌다.”라고 말했다.

해각카페의 경영이 단번에 성공한 후에 Fede는 윈드서핑을 가르치는 수업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는 “타이둥의 서핑 스포츠는 이미 발전이 좋게 되어있다. 나는 수상활동을 안전하게 하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을 희망하며, 몇 년이 지난 후에는 타이둥의 해안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윈드서핑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윈드서핑은 건강하고 오염이 없는 스포츠이며 게다가 해양 생태에 영향이 없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Fede는 이어서 타이둥의 우월한 자연 조건인 동북 계절풍을 언급하면서 “여기의 바람은 강하고 안정 되어있다. 겨울, 여름은 다른 바닷바람이다. 여름은 초급자들이 파도타기, 윈드 서핑보드, 요트를 타기에 적합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타기에 적합하다.”라고 얘기했다. 자신의 타이둥이 세계를 향해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서, Fede는 관광이 발전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한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 현재 문제는 바로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매일마다 사람들이 방 가격이 이로 인해 비싸 졌고, 교통이 혼잡스럽고, 차가 막히고 관광객들은 어떤 때는 더럽게 하거나 예의가 없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과다한 수량의 관광객은 반대로 현지인이 피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Fede는 타이둥이 붐비고 시끄러운 곳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방문하고 다시 방문하는 그런 도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타이둥이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을 계속적으로 유지시키기만 한다면 미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이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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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좋은 물, 좋은 산을 제외하고 타이둥은 최근 몇 년간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서핑 운동으로도 유명해졌다. 동해안은 국제 서핑 손님들이 언급한 서핑 성지가 된 이후에 세계 각국의 서핑 전문가들을 사로 잡아 이 곳으로 파도를 타러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도쿄에서 온 Jun은 타이둥에서 서핑 타는 것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타이둥에서 태어나 일생을 지낸 부농족(布農)족 여자아이를 사랑하여 자신의 일생을 이곳에 바치기로 결정했고,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타이둥에 오기전 Jun은 원래 일본 도쿄의 한 펍에서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솜씨가 훌륭했습니다. 맨 처음 친구의 소개를 통해 타이둥 부농족 마을에서 공연을 했었고, Jun은 부농족 마을의 경영방식과 생각들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는 곧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부농족 마을의 일본어 홈페이지 및 일본어로 편집하고 등록하는 것을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농족 마을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Jun은 원주민 마을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일반 일본인 관광객이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일을 연구하러 온 일본인이 있었고, 심지어 그는 몇몇의 80세 이상의 ‘만생’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 때 몇몇 일본연장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중간에서 보면서 그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대해 더 짙은 감정이 생겼다.

그런데 왜 타이둥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는가?

“왜냐하면 타이둥의 사람들과 풍경이 비교적 좋고, 타이둥의 모든 것이 좋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일본인의 발음을 가지고 있는 Jun은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설명했다. 그가 타이둥을 좋아하는 것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서핑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Jun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나며 “전 세계의 모든 서핑에 적합한 파도는 자연생성 되는 것이고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동해안 해안길의 파도를 익히 알고 있는 Jun은 서핑 관광객을 데리고 Jun만 아는 서핑 장소로 데리고 가서 서핑객들이 서핑 특기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언어 소통이 편한 일본 관광객을 좋아한다. 그들 대부분은 Jun의 펜션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매년 약 3-4백명의 일본 서핑 관광객이 타이둥에서 활동을 한다. 특히 동북 계절풍이 불기 시작할 때에 파도의 기세를 돕고, 더군다나 객가달인이 해변의 원인까지 끌어들입니다.

「동허(타이둥 지역명)에서 최초로 서핑을 주제로한 펜션을 운영했다. Jun은 처음에 시작했을 때 서핑 활동을 널리 보급하는게 순조롭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방금 막 시작했을 때에 모든 것이 힘들었다. 여기 주변 사람들은 서핑을 할 줄 몰라서 널리 보급하는게 힘들었다.”라며 타이둥에서 초기에 창업을 했을 때의 어려움을 얘기했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굳건히 보전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타이완(대만)은 해양국가이다. 그러나 일본 아이들과 비교해서 타이완의 아이들은 수영을 할 줄 아는 아이가 비교적 작은 것 같네?”라며 의문을 가졌다. Jun을 포함하여 타이둥현 서핑 운동 협회 안에서 3년 전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계획을 깊이 갈다」를 시작했다. 타이둥의 아이들이 바다의 나라에서 즐거울 수 있길 바라며 자연의 평화와 공존을 알기를 바란다. 수업은 여름방학이 가까워졌을 때, 시작하며 타이둥 서핑 협회가 타이둥 아이들에게 수영과 보드를 타는 법과 해변 환경 교육을 가르치며 본토의 생태활동 등을 진행한다. “올해는 또한 아이들에게 노래 2곡을 가르치고 부르게 해서 철화촌(鐵花村)에서 발표회를 할 것이다.”라고 기쁜마음으로 알렸다.

그가 이 지역을 사랑하고, 이 곳의 어린이들이 모두 미래의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깊이 알아야 한다. 그들의 수업 중 학습 성장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자연 교육의 방식이 타이둥에 돌아오게 된다면 그는 엄청 만족하게 될 것이다.

타이둥 사람의 열정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Jun은 이것이 타이둥의 가장 귀한 재산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래서 타이둥에서 지낸 13년의 일출, 일몰과 파도에 안정적인 생활 모두가 그의 내재화된 동력이다. 그는 자신 스스로 타이둥에 더 많은 것을 들이고 진실로 이 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길 기대합니다.

마크 – 뉴질랜드인 서핑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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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제오픈서핑경기가 12월3일 타이동 진준에서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이번 경기는 타이동에서 개최한 7번째 국제서핑경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WSL세계 롱 보드 챔피언이 진준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세계 롱 보드 오픈 경기가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행사의 등급 또한 현재까지 가장 높았다.세계 각지에서 참가한 실력있는 서퍼들이 진준의 파도 속에서 역량을 겨룬 멋진 경기였다.

이번 행사가 뉴질랜드에서 타이동으로 이주해 온 마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다.마크는 현재 타이동에서 서핑을 가르치고 있는 서핑 애호가이다.“동허 지역에는 서핑을 잘 하는 젊은이들이 매우 많아요.전문 훈련을 받는다면 미래의 국제서핑경기에서 타이완을 대표하여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거예요.”오랜시간 동안 동부해안을 관찰해 온 마크는 타이동은 자본을 투자해 현지 서핑선수들을 발굴하고 배양할 수 있는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는 이미 완벽한 천연 자원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마크의 타이베이행 비즈니스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한순간의 생각으로 마크는 아름다운 해안이라 일컬어지는 인적 드물고 순수한 자연의 타이동을 방문하게 되었다.타이베이에서 즉시 자전거를 산 후 화련행 비행기를 탔다.화련에서 자전거를 타고 타이동에 도착한 후 잠시 머무른 것이 2주였다. “그 당시 타이동에는 백패커가 존재하지 않았어요.민박이나 서핑숍도 없었고 해변에서 서핑을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친구를 사귀기는 아주 쉬웠답니다!”,“그때는 사람들이 돈 버느라 이렇게 바쁘지는 않았거든요.”라고 덧붙이며 마크는 웃어 보였다. 타이동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니 가슴이 여전히 따뜻해졌다.그렇지만 마크는 지금의 와이프인 카이트를 만난 후에야 타이동과 진정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잠시 동안의 타이동 방문을 마친 후 또다시 상해,홍콩,타이완을 오가는 바쁜 생활을 계속했다.그의 두 아이가 연이어 출생해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적었다.그는 이렇게 바쁜 생활이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그들 부부는 뉴질랜드로 돌아가는 것과 타이동에 거주하는 것 중 타이동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이어가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중국어를 배우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타이동은 치안이 매우 좋습니다.또한 이곳 사람들은 우호적이어서 생활하기에 정말 적합한 곳입니다.”라고 마크는 말했다.물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서핑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타이동에서 영어와 서핑을 가르치며 자신의 농지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 자연 농법으로 채소와 약초들을 키우는 바쁘지만 너무나 기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서핑은 계절성 스포츠이지요.서핑은 여름에 적합해서 겨울의 서핑수업은 자연히 적습니다.그래서 자신의 농지를 경영하고 싶은 것입니다.이것은 또한 저희 어머니가 뉴질랜드에서 서양약초들을 키우신 방법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마크는 타이동의 변화를 친히 목격했다.“현재 많은 경기들이 타이동에서 개최됩니다.민박과 호텔들도 점차 많아졌고요. 예전의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었어요.저희가 타이동에 왔을 때만 해도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 걱정이었답니다.”마크는 점차 국제화가 되어 가는 타이동에게 찬사를 표했지만 또한 이것이 타이동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라고 여겼다.왜냐하면 타이동의 상점과 민박업자 등이 관광산업에서 이득을 얻으면서 과도한 상업화가 되지 않도록 타이동의 천연 자원을 보호할 수 있는 균형적이고 정확한 개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타이동이 외국인 관광객을 계속 유치할 수 있을지 없을지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Mark

“교육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아이들이 이곳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더 이곳에 머물고 싶어할 것이며 심지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거주하고자 할 것입니다.”타이동으로 이주해 온 마크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그의 두 아이들도 서핑을 할 수 있게 되었다.“안타깝게도 타이동의 초등학교에는 한 학교에만 수영장이 설치되어 있어요.좀 더 많다면 참 좋겠지만요!” 타이동을 사랑하기에 이곳을 향한 무한한 기대들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마크는 교육에 대해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장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땅을 존중하고 대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였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해 타이동의 순수함과 균형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타이동만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기 바랬다.

“타이동에

사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라고 일본에서 온 모리시타 마사코 양이 말했다.탁자 위의 찬 보리차를 담은 컵의 물방울이 땀처럼 흘러 내리고 마사코 양의 그 말을 듣는 내 몸에도 식은 땀이 흘렀다.“하지만 지금은 타이동이 아주 좋아졌어요!”옅은 미소와 일본여성 특유의 온유한 성품을 마사코에게서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동창의 소개로 청공에 살고 있는 현재의 남편을 알게 되었다.교제기간 동안 청공에 몇 번 여행을 왔었지만 마사코의 직감은 절대로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하지만 남편의 성실과 노력이 그녀를 감동시켰고 그녀는 타이완에서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에 승낙했다.“대만에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무척 낯설고 힘들었어요!”라고 마사코는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일본 오사카에서 자란 그녀에게 번영과 편리함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하지만 당시의 타이동에서는 아무런 고향 음식을 찾아 볼 수 없어 타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그녀에게 더욱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15년전 결혼하여 청공에 왔을 때 이곳에는 편의점이 없었어요.그 당시 타이동의 첫 편의점은 종화루에 있었답니다.하지만 그곳에서도 일본 물건을 찾아볼 수 없었어요.”마사코는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을 보고는 일본 생각을 하며 먹어 봤지만 고향의 맛은 전혀 아니었다.이런 어려움들이 그녀로 하여금 하염없이 눈물을 흐르게 했다.불행 중 다행이도 타이동의 과일은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과일만은 열심히 먹을 수 있었다.그러다가 마사코와 그의 남편이 특별히 까오슝에 가서 일본 물품을 사고 나서야 고향에 대한 향수가 멈췄다.

초기에는 음식과 의사소통 때문에 마사코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어 늘 생활의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후에 고전발레를 배운 그녀에게 발레 레슨을 열어 보라는 남편의 격려로 청공 지역의 아이들에게 고전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발레를 배우러 온 그 아이들이 뜻밖에도 마사코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처음에 발레를 가르칠 때도 언어의 문제가 있었어요.제 마음의 문도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였고요.그때는 제가 한 마디 말을 하면 남편이 한 마디씩 통역하는 방식으로 발레를 가르쳤어요.”마사코는 처음에는 어렵게 수업을 시작했지만 아이들과의 교제속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학부모들의 지지로 인해 기분이 점점 호전되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매년 아이들을 위해 고전발레 발표회를 열어주고 있다.열심히 발레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배운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이것은 아이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에요.발표회 때 필요한 무용복과 무대 설치,무대 음향 등을 학부모들도 열심히 도와주셔서 저를 많이 감동시킨답니다.”

마치 한 줄기 서광을 본 듯 마사코는 심지어 자신이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청공에 오게 되었다고 느꼈다.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난 십여 년간 겪은 적응의 아픔들도 구름 걷힌 하늘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제 마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처음에는 타이완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이웃들이 너무 친절한 것도 저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일본에서는 손님이 언제 방문할지 사전에 미리 연락하는 것이 기본 예의이지만 이점은 너무 친절한 타이동 시골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옆집 사람들은 생각만 나면 자동으로 찾아와 관심을 갖거나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이러한 친절이 마사코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타이완식 친절을 이해하기 시작한 건 2년전 일본의 사카이 미츠코 감독이 청공에 다큐멘터리“타이완 만세”를 찍으러 와서는 가끔씩 마사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부터이다.사카이 감독이 보여준 타이완 현지 이야기들을 통해 타이완 사람들의 성격과 관념 및 친절이 만들어진 뒷 배경을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그제서야 마사코는 현지 친구들과 마음을 연 교제를 할 수 있었다.더 이상 힘들어 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진심으로 타이동을 좋아하게 되었고 타이동에서의 생활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일본에 돌아갈 때마다 타이동의 가방을 가져다가 친구들에게 선물하고는 해요.친구들이 아주 좋아한답니다.”타이동의 시장에 가면 파랑,초록,빨강이 섞여 있는 손가방을 파는데 가격이 무척 싸지만 일본 친구들은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너무 궁금한 나머지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마사코가 말하는 것이 바로 타이완에서 현재 열렬히 토론되고 있는 “가지 가방(전통 시장 바구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전통 손가방이 마사코가 일본에 가져가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던 것이다.

처음의 저항에서 좋아하기에 이르기까지 운명적으로 청공에 와서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무대위에서 발레를 했다.또한 대일교류를 촉진시키는 부문에 자신의 언어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2016년 일본 사가현의 타라 고등학교가 타이동 청공상업수산전문학교을 방문하여 교류할 때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타이동을 좋아하는 마음을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 타이동의 아이들이 더 다양한 시야를 갖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탐색할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을 제공하였다.“왜냐하면 저는 타이동의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왔기 때문이에요.”라고 마사코는 자신있게 웃으며 말했다.

Simon Foster & Tot Foster

2017년 한여름 타이 11선을 연이은 바다는 짙푸렀고 옅은 안개 속 쌓아 올려진 해안 산맥에는 상승하고픈 열기로 꽉 차 있었다.먼 영국 땅에서 이주해 작은 청공 마을에 자리잡은 영국의 한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북쪽을 향해 질주했다.

사이먼(Simon)과 탓(Tot)은 영국인 부부로 귀여운 두 딸 사샤(Sasha), 몰리(Molly)와 함께 청공 시내에서 멀지 않은 작은 부락에 살고 있었다. 맑은 날이 드물고 연중 온도가 낮은 유럽과는 달리 사계절이 비교적 분명한 타이동의 화창한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방문지에 도착한 시각은 막 정오가 지났을 때였는데 사람들마다 에어콘이 틀어져 있는 방으로 숨어 들어가는 시간인 정오의 고온이 그녀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듯이 보였다.탓(Tot)은 콜라만 한 병 든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 앞에 앉아 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타이완에 있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2년전에야 까오슝에서 타이동으로 이사하게 되었다.“타이동의 깨끗하고 평온함,자연환경,느린 라이프 스타일, 특히 아름다운 해변이 너무 좋아요. ”탓(Tot)의 미소는 매우 활력적이었다. 왜 타이동에 와서 거주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이 그 당시 그들을 오게 했던 타이동의 매력을 말할 수 있었다.엄마 곁에서 왔다갔다 한 시도 쉬지 않는 아이가 큰 딸 사샤(Sasha)였다.현재 청공 초등학교 1학년으로 반에서 금발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유일한 외국학생으로 처음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이곳에는 외국인이 많지 않아 저희가 갓 이사왔을 때는 현지 주민들이 특별히 차를 타고 집 문 앞에 와서 우리를 쳐다보고는 했지요.” 호기심에 가득찬 이웃들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친숙해 졌고 심지어는 요리기술을 교환할 만큼 친한 친구가 되었다.두 딸들의 입맛도 현지인의 동양 입맛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샤(Sasha)는 매번 학교 급식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투덜거렸다.탓(Tot)은 조금 억울한 듯 딸들은 확실히 중식 요리를 더 좋아하고 학교에서도 잘 적응해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린다고 했다.인터뷰를 잠시 쉬는 동안 사샤(Sasha)에게 타이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커다란 파란 눈을 깜박이며 “싼시엔타이,온천,동허 만두,해변….” 이라고 말하고는 자전거를 끌고 옆 집을 한 바퀴 둘러보려 나섰다.

탓(Tot)의 남편 사이먼(Simon)은 여행 서적을 쓰는 작가이다.영어판 타이완 여행 가이드「The Rough Guide to Taiwan」를 출판한 적이 있고 타이완 각지로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한다.그와 탓(Tot)은 타이동 시내에 살지 않고 독특하게도 대자연에 감싸여 있는 조용하고 조화로운 작은 마을인 청공을 거주지로 선택했다.산과 바다를 곁으로 한 이곳에서 그의 새로운 작품도 완성할 계획이다.“타이동은 외국인에게 소개시켜 줄만한 여러가지 특색이 있어요.예를들어 원주민 부락의 추수 축제는 매우 흥미롭답니다.” 탓(Tot)은 자신의 친구들이 추수 축제에 무척 참가하고 싶어하며 원주민 전통 의상,노래와 춤,원주민 요리 등에도 굉장한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추수 축제에 관한 영어 자료가 너무 미흡해 만일 인터넷에서 영어 위주로 광고를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 쯤 탓(Tot)의 둘째 딸 몰리(Molly)도 나와서 인사를 했다.처음에는 조금 쑥쓰러웠지만 엄마에게 어린양을 부리고는 곧 밝은 미소를 드러냈다.그런 뒤 팔짝팔짝 뛰며 이웃 집 언니를 쫒아 놀러 나갔다.“이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에요.이곳에서 저의 두 딸을 키울 수 있어 매우 기쁘답니다.”탓(Tot)은 딸들의 기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매우 감동적인 듯이 말했다.청공의 작은 마을에서 조용하고 행복하게 생활하는 한 영국인 가정처럼 타이동의 조용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타이동의 특별함에 감탄하는 타이동 사람만의 행복감을 여러분도 느끼셨는지요?

Amir Habib Shaikh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옷차림이 우리와 확연히 다른 무슬림이란 마치 신비한 베일을 둘러 쓴 특수 종족일 것이다.어쩌면 그것은 뉴스나 영화 속 스토리의 묘사를 통한 표면적인 이해일 수 있다.무슬림 인구가 비록 17억을 넘기까지 증가했어도 타이완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마치 중동처럼 도달할 수 없을 듯 멀게만 느껴진다.

이국 결혼을 올린 한 무슬림 부부가 종교신앙이나 생활방식은 비록 대부분의 타이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만 묵묵히 타이동으로 이주한 후 정성껏 헌신하고 있다.“타이동의 아이들은 정말 귀여워요.그래서 저희는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답니다.저희가 가진 힘으로 이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라고 Amir Habib Shaikh가 말했다.

그가 타이완에서 생활한지는 이미 15년이 넘었다.원래는 비즈니스 업무로 타이완에서 전자 부품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후에 현재의 타이완 와이프를 만나 연애 후 결혼하게 되었다.자신의 고향인 파키스탄과 타이완 사이를 수차례 왕복한 후 결국에는 타이완 북부에 거주하게 되었다.한 번은 가족여행으로 타이동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곳의 조용함과 평화로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원주민 부락의 아이들과 깊이 있게 만나고 교제한 후 이들 부부는 타이완의 정원인 타이동으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Amir Habib Shaikh에게는 조용함과 평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 외에도 원주민 부락의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타이동의 가장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타이동의 무슬림 인구는 매우 극소하다.그것은 이슬람교의 음식과 생활 규범이 일반인들과 편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저희는 하루에 5번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돼지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셔서도 안되고요.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랍니다.”타이베이에서 타이동으로 이사한 후로 타이베이의 무슬림 친구가 이곳에서 타이동에 여행 온 무슬림 여행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만들어 보라고 건의했다.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타이동에 할랄 인증을 받은 식당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타이완을 여행하는 무슬림들이 타이동을 지날 때면 계란과 건조식품으로 끼니를 때울 수 밖에 없어 매우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자주 듣곤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교 도시락 제작부터 시작했다.그들을 점점 주의하게 된 여행업자들은 더 많은 무슬림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랄 식당 개업을 건의했다. 또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도실도 제공해 주기를 바랬다.“모든 무슬림에게 있어 모스크(회교 사원)는 그들의 집과 같습니다.모스크(회교 사원)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면 무슬림들은 마음의 평화와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Amir Habib Shaikh는 타이동에는 수많은 교회와 신전들이 있지만 단 한 개의 모스크(회교 사원)도 없다고 말했다.무슬림의 타이동 관광 추진은 비교적 취약한 부분이기에 그들은 타이9선에 한 할랄 식당을 개업했다. 무슬림들은 타이동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 후 이곳에서 이슬람교의 규범에 맞게 현지 식재료들로 제조한 할랄 요리들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Amir Habib Shaikh와 그의 와이프는 타이동 시골 부락의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 외에도 전자 거래 플랫폼을 설립하기를 희망한다.할랄 인증받은 타이동의 특산물들을 천억 달러 수요의 할랄시장에 마케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중동국가나 동남아 회교 국가도 모두 타이동의 우수한 특산물들을 만나 볼 수 있게 된다.“타이동시는 우호적이고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저의 무슬림 친구들도 모두 이곳에 와서 살고 싶어 하지요.하지만 이곳에 모스크(회교 사원)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고는 모두들 포기하고 맙니다.” Amir Habib Shaikh는 매일의 기도 과제를 집에서 수행할 수 있지만 멀리서 온 무슬림 여행객에게 있어 기도할 수 있는 모스크(회교 사원)가 없다는 사실은 심령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이 없음을 의미하기에 매우 불편한 것이다.이 사실이 무슬림 여행객의 여행 의욕을 크게 저하시키고 있다.“만일 아름다운 동해안에 타이완에서 가장 특색있는 모스크를 하나 건축할 수 있다면 반드시 무슬림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방문할 것입니다.” Amir Habib Shaikh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타이동의 음식점과 숙박 등의 조건이 여행객들을 접대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했다.타이동에서도 무슬림 여행객들을 창조하는 물결을 만들어 내어 이곳의 우호적이고 따뜻한 인정을 회교권의 사람들도 느껴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참고:할랄 인증(Halal Certification)은 이슬람 율법에서 유래한다.무슬림의 일상 생활 식품 또는 신체에 접촉하는 제품들은 반드시 이슬람 교리인 「할랄(Halal)」에 부합되어야 한다.불결한 물건(예:돼지,알콜)은 만져서는 안된다. 「할랄(Halal)」은 무슬림이 식용하거나 신체에 접촉하는 제품에 대해 반드시 출처를 추적하며 원료부터 공장시설, 제조기계,포장,보관저장,물류를 포함한 제품의 처리 및 심지어 마지막 소매시장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이슬람 교리에 부합되어야 한다.

(자료 출처: https://asean.thenewslens.com/article/69733)

Lorenzo Salvadore

비행은 인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된 가장 오래된 욕망 중의 하나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과 착륙하는 동안 경험하는 고속 질주와 지구 중력을 이탈하는 느낌이 사람을 깊이 매료시킨다.

타이완 처음으로 민간항공국의 승인을 받은 비행훈련센터가 바로 푸른 하늘과 녹지가 있는 타이동에 설립되었다.

“만일 비행사가 되고 싶다면 해외에서 교습을 받거나 이곳에서 훈련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하늘을 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거죠!”아펙스 비행훈련센터에서 비행교사를 담임하고 있는 로렌조 살바도르는 이렇게 자신있게 말했다.마치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듯 말이다.유행과 디자인의 도시인 이탈이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유럽 각국에 항공 여행을 다니며 비행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현재 그는 이미 풍부한 경험의 비행교사이다.

타이동에서 근무하며 거주한 약2년 동안 로렌조는 타이동의 어디가 맛집이고 어디가 재미있는지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히 안다고 할 수 있었다.“저는 푸강 항구를 매우 좋아합니다.항구 주변에서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거든요.그리고 창빈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휴일만 되면 바로 바닷가로 달려가고 싶답니다!”라며물 흐르듯 쉬지 않고 몇 개의 해안선 명소들을 말하고는 아직 못다한 말이 있는 듯 로렌조는 내륙선에서 그가 어느 곳에 놀러가기를 가장 좋아하는지 서슴없이 말하기 시작했다.“루예도 좋아요.그곳에는 차밭과 드넓은 파인애플 밭이 있답니다.저는 패러 글라이딩을 무척 해보고 싶지만 아직 해보지는 못했어요.열기구는 이미 타보았어요.하지만 비행속도가 너무 느려서 좀 지루했지요.…”말을 마치자 마자 그는 곧 웃음을 지었다.왜냐하면 열기구를 타고서 지루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아는 사람이나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렌조가 근 2년간의 타이동 생활을 말할 때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현재 이곳에서의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는 것이 분명했으며 또한 타이동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로렌조에게 타이동에 대한 인상이 처음부터 이렇게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직장 면접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타이동에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당시 비행기가 타이동 상공을 날아갈 때 처음으로 타이동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마음속으로‘와!타이동은 정말 외진 시골인가 보다.무척 황량해 보이네…’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다행이도 로렌조는 겉인상만 가지고 쉽게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타이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아야 한다고 타일렀다.“일단 타이동으로 이사를 한 후 저는 이곳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어요.그리고 타이동은 정말 좋은 곳이라고 느끼게 되었지요!”

타이동 근 2년간의 변화는 로렌조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2년전 타이동에는 지금처럼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있지 않았어요.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곳을 알게 되었답니다.타이동 정부는 국제 마케팅에서 타이동을 알리는 일에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예를 들면 타이동의 영어버전 마케팅 동영상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아주 잘 찍었어요!”라고 그는 칭찬했다.하지만 로렌조는 아직 더 노력해야 할 부분도 제시해 주었다.“현지 주택 임대나 매매 관련 정보들을 조회할 수 있는 영어 자료가 없어요.이 부분은 당시 제가 타이동 관련정보들을 검색할 때 겪었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로렌조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귀중하고 실용적인 건의를 해주었다.

“만일 가능하다면 저는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기를 바래요!”다른 대형 도시에서 살 때 생길 수 있는 붐비고 혼란스러운 분주함과 비교해 볼 때 로렌조는 자신이 타이동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타이동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그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소유하게 해주었다.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비록 첫인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풍부한 타이동의 가치는 모든 여행자나 거주자가 날마다 거듭되는 일출과 일몰 속에서 깊이 음미해 볼 만하다.

Patrick

만약 100명의 사람들에게 100가지의 형용사로 타이동을 형용하라고 요청한다면 가장 연상할 수 없는 단어가 바로 “럭져리(고급)”일 것이다.하지만 두란 마을 끝머리에 자리잡은 프랑스 레스토랑“두란 크렙(Dulan Crap)”의 사장 패트릭(Patrick)은“럭져리(Luxury)”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타이동에 관한 첫느낌을 표현했다.

처음 타이완에 왔을 때,패트릭은 먼저 번화한 타이베이에 거주하면서 일반 도시인에게 익숙한 바쁜 생활을 보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프랑스인의 자연을 사랑하고 낭만적인 천성이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곳을 찾아 가도록 그를 끊임없이 재촉했다.그래서 그는 아내 루쥔과 함께 타이완 일주를 시작했고 타이완 일주를 다하지 못해 타이동의 두란에 거주하게 되었다.

‘왜 화련을 택하지 않았냐구요?생활의 편리성으로 볼 때 화련의 생활기능이 타이동보다 더 나을 텐데 타이동을 선택한 이유가 뭐냐구요?’패트릭이 입을 열기도 전에 루쥔이 먼저 대답했다.

“화련은 아직 가보지도 않았는데 패트릭이 더 이상 가려하지 않았어요!” 모든 인터뷰 시간동안 북프랑스에서 온 요리사가 어떻게 타이동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것 외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부부간의 서로 주고 받는 장난스러운 말싸움이었다.그 말싸움이 분위기를 적지않이 화기애애하게 해주었고 네팔에서 맺어진 이국인연이 결국은 타이완의 동부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었음을 깨닫게 했다.그것은 두 사람 다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하늘의 뜻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여기를 보세요.제 문앞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고 창문 밖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데 이런 생활 환경은 정말로 고급스럽지(럭져리하지) 않습니까?나는 누군가가 고급이라는 말로 타이동을 형용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게다가 패트릭이 말한 것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산을 기대고 바다를 옆으로 한 넓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지만, 생활비가 큰 부담이 되지 않는 거주지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타이완 전체에서도 오직 타이동만이 이런 축복받은 조건을 가졌다.

아마도 프랑스인의 고칠 수 없는 낭만적인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타이동에서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저녁에만 영업하는 프랑스 레스토랑을 경영하면서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많은 친구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는 여러가지 물건을 사거나 영수증을 지불하거나 무언가를 바쁘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패트릭은 레스토랑이 휴업하는 날이면 시장에 가서 재료를 준비하거나 해변에서 자신의 카약(Kayak)을 타거나 심지어 집에서 주방을 청소하거나 프랑스에서 가져온 가구들을 정리하는 등의 단순한 집안일들을 하는 것이 자신을 더 기쁘게 한다고 말했다. 바로 30분 후면 도착할 미식가들에게 섬세하고 맛있는 정통 프랑스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가스 렌지에 데친 푸른 브로콜리를 요리대접에 부어 넣는 패트릭과 다른 한쪽에서는 세심히 로메인 상추를 씻고 있는 루쥔을 바라보며 한번도 손을 멈추지 않는 두 사람은 주방에서 그들만의 조화로운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타이동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운좋게도 처음부터 좋은 집주인을 만나 합리적인 가격에 지금의 레스토랑 자리를 임대하게 되었다.패트릭과 루쥔은 정성들여 직접 레스토랑 실내장식을 했다.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들은 두란에서 가장 정통적인 프랑스 요리를 만들어 냈다.“저는 최대한 현지의 신선한 재료들을 사용합니다. 비록 중국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만든 저의 요리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영어로 말하지만 선명한 프랑스 특유의 어투를 벗어버릴 수 없었다.오히려 그 어투가 패트릭의 이 땅의 사람과 문물에 대한 열정을 더욱더 잘 나타냈다.또한 그가 처음에 했던 말처럼 푸른산과 한 폭의 그림같은 해안에 둘러 싸여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생활이야말로 인생중의 최고급이 아니겠는가!

Tim Joel

동부 지방 고속도로 11번에 위치하는 두란마을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기로 유명하다. 그 중에는 요리 기술이 뛰어난 프랑스 요리사, 네덜란드 창작 음악 기타리스트, 수공예품을 잘 만드는 프랑스 예술가 등 그들은 현지의 전통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는 체제 아래 원래의 평범하고 소박했던 두란마을을 순식간에 화려하고 열광적인 곳으로 뒤바꿔 놓았다. 2010년10월10일, 그날은 타이동에 여행 온 영국 화가 팀이 두란의 옛 설탕공장 근처에 있을때였다. 열악한 날씨와 시야가 좋지 못한 관계로 그만 나무를 들이받고는 다리가 부러져버렸다. 본래 이 사고가 자기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재앙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타이동 병원에 실려간 후 그의 평생에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타이동 여인을 만난 것이다.당시에 팀의 아내는 병원의 간호사이었고 두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최후 두 사람은 서로 함께하기로 결정했고 그 때부터 여행객에서 거주자가 된 그는 다시는 타이동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팀이 두란에 자리잡기 전에는 타이베이에 머물고 있었으며 2002년부터 타이완의 곳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처음 타이동에 왔을 때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타이베이로 돌아간 후에도 기억속의 아름다운 동해안이 늘 그를 부르고 있었다.마침내 그는 타이동으로 이사를 마음먹게 되었다. 그는 ‘도시생활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타이동의 산과 바다,햇빛,공기 모든 것이 나를 기쁘게 해.내가 꼭 이곳에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겠어.’라고 생각했다. 팀은 진지한 표정과 아주 편안한 영국식 어투로“나는 이곳 사람들이 좋아요. 그리고 조용한 생활 환경도요.”라고 타이동에 대한 사랑을 표시했다.아마도 모든 예술가들은 생각을 가라앉히고 살아있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곳을 좋아하는 듯 싶다.두란은 그에 딱 맞게 자연환경에 둘러 싸인 해변의 작은 집, 문을 열면 탁트인 태평양, 대자연과의 조화와 평화 그리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소유한 곳이다. 작품마다 활력과 자연의 열정이 넘쳐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팀의 그 아름다운 그림들이 모두 동부 특유의 아름다운 환경아래서 태어났다.
비록 타이완에 온지 10여년이 되었지만 팀은 자신의 중국어가 늘지 않은 것을 스스로 비웃었다. 타이동도 점차 영어친화적 환경 보급에 노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팀은 깊은 감사를 보냈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더 열심히 중국어를 배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고정관념속의 우울한 영국인의 인상을 팀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낙관적인 삶의 철학을 소유한 그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그림을 통하여 감상하는 이들에게 이 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초청하여 두란해변 청소운동을 추진하고 있는데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이 아름다운 곳이 점점 대량의 병 조각들과 어망,패트병 등의 쓰레기에 오염되어 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팀은 페이스북에서“ONLY SOULTIONS”이라는 운동을 창설하여 현지의 많은 상점과 서퍼 및 여행객들의 호응을 얻었다.그는 모든 사람들이 해변오염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바라며 이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이곳에 와서 거주하려 하는 외국인들도 와서 돈만 버는 것이 아닌 이런 운동들을 통해 이 땅의 마지막 비오염지를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행하길 바랬다. “제 부모님들은 영국의 두란과 아주 닮은 곳에서 살고 계십니다.그곳 이름은“Mousehole”인데, 깨끗한 바다와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어 저의 부모님들이 두란에 오셨을 때에도 이곳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팀은 두란에 대한 사랑을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의 가족들에게도 전염시켜 그의 부모들이 타이동에 와서 팀을 만나볼 때도 타이동의 모든 명소들과 아름다운 산과 바다 곳곳을 둘러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두란해변의 지속적인 환경보호를 위해 여전히 팀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만일 여러분도 두란에 오셔서 화구를 가지고 해변이나 산어귀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외국인을 만난다면 그에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두란을 위한 그의 노력을 위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면 한다.

Mark Jackson-마크 잭슨-두란 와까리꽁(WaGaLiGong) 이국 요리 레스토랑

Mark

16년 전,사랑에 상처 입은 대학 졸업생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고향을 떠나 타이완에 도착했다.홀로 3개의 시간대를 지나 소문으로만 듣던 아름다운 타이동에 도착한 것이다.이제 그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번창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게 되었다.

마크는 전혀 힘들지 않게 2003년의 과거를 연상했다.‘그당시 저는 4년 동안 교제했던 약혼녀와 헤어져 너무 슬펐어요.대학을 졸업할 당시의 저는 아무런 포부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저를 아프게 하는 곳을 단연히 떠났지요.’세계가 이렇게 넓은데 왜 하필이면 타이완일까?그 당시 타이완은 원자력 에너지를 개발하려고 하고 있었고 저렴한 원자력 원료를 생산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원자력 에너지 과학자로서 타이완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이에 자주 비즈니스 여행을 다녔다.게다가 타이완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가 타이완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타이완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으로 가득차 있었다며 마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인생의 수렁에서 헤어나와 다시 일어서려 했던 마크에게 처음 떠오른 곳이 바로 타이완이었다.그리고 타이동에 도착한 후에야 천지가 뒤집히는 변화가 생겼다.

‘갇 타이완에 왔을 때는 먼저 타이난에 있는 친구의 친구를 찾아갔죠.그는 아주 낡은 오토바이를 한 대 주며 타이완을 일주해 보라고 권했어요. 게다가 타이동을 꼭 가보라고 했죠!’그때 타이동에 대해 처음 들었다며 마크는 눈을 반짝였다.타이동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마크는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컨딩으로 출발했다.하지만 핑동 부근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현지 경찰이 2시간 동안 앞뒤좌우를 호위하며 정확한 도로까지 호송한 후에야 나를 보내줬어요!’마크는 이 인상 깊었던 경험을 통해 타이완 사람들의 열정과 따뜻함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타이완은 정말 멋진 나라예요!’라고 마크는 말했다.

Mark was teaching a student

시간이 흐를 수록 사랑의 상처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못했다.타이동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내의 멕시코 식당에서 대학 동기 토마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서로를 알아본 후 두 사람은 너무나 흥분했다.토마스는 마크를 데리고 주저 없이 해변으로 갔다.타이11선 위를 달려 푸강에서 샤오예류에 이르는 구간에 도착했다.‘도로 양 옆으로 높이 솟은 야자나무와 멀리 보이는 두란산을 바라보며 마치 숨이 금방 멎을 것만 같았어요.이곳은 정말 하와이와 닮았다고 생각했지요.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저의 고향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도로 옆으로 멋진 해안이 이어져 있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그 때 마크는 그가 영원히 거주하고 싶은 곳이 바로 이곳, 타이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의 인구 조성은 매우 흥미로워요.한족,원주민 그리고 저와 같은 외국인들이 있지요.날씨는 항상 맑고,생활템포는 아주 느린 바쁘지 않은 곳이지요.치안도 좋아서 제 아이는 두란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데 방과 후 혼자서 집에 돌아와도 걱정되지 않아요.’현재 두란설탕공장 건너편에 와까리꽁(WaGaLiGong) 이국 요리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서핑 교습도 하고 있다.즐겁게 생활하는 동안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것들이 모두 마크가 타이동을 사랑하게 된 이유였다.

‘하지만…’마크는 무거운 어투로 ‘유일한 문제는 주위의 환경들이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어요.제가 처음 왔던 때와는 이미 달라졌지요. ’라고 말했다.근 몇 년간 해외에서 온 친구들을 데리고 해변에 갔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깨끗한 해변이 아니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이었다. 이런 변화를 보며 마크는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정부나 일반인에 관계 없이 모두 협력해서 해양 생태계와 환경을 보호한다면 관광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동의 소중한 천연 자원도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곳을 사랑한다면 이곳에 관심을 기울일 거예요.저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그래서 타이동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답니다!’

마크는 해변미화활동을 더욱 많이 개최하고 어류보호지역을 더 넓게 확장시킬 것을 건의했다.‘푸산어류보호지역은 정말 훌륭해요.그곳은 어류 복원 효과를 달성했지요.’, ‘영구적인 유기농 퍼머컬쳐 농법(Permaculture)은 현재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자연과 공존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고 추진해 볼만 해요.’라고 마크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타이동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곳에 대한 더 높은 기대도 하게 된다.만약 타이동이 생태계우호도시인 에코 카운티(Eco County)를 목표로 발전해 간다면 에코 투어리즘(Eco Tourism)의 특색을 국제적으로 홍보할 수도 있다.‘외국인들은 이 개념을 매우 좋아해요.이것은 또한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요.영구적인 환경 보호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반드시 직면해야만 하는 문제이지요.’타이동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타이동의 자연환경을 보호한다면 10년,20년 심지어 천년,만년이 지나도 타이동은 여전히 깨끗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마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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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하는-스파이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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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동에 거주하는 프라빈(Praveen)이 소개하는 인도 요리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타이동은 깨끗한 하늘과 아름다운 바다를 제외하면 여전히 물질 환경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시골이다.그러나 근 년간 대형 국제 행사와 마케팅을 통해 타이동은 국제화를 향한 발전 단계에 들어섰고 다양한 국가의 신 이주민들이 점점 더 많이 타이동에 거주하게 되었다.

타이동에서는 유럽과 미국에서 온 외국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인도인의 얼굴은 특별히 눈길을 끈다.남인도의 방갈로르에서 타이동으로 이주해 온 프라빈이 타이완에 온 지는 이미 8년이 되었다.‘타이동은 제가 타이완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거주한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붐비고 분주한 도시인 남인도의 방갈로르에서 타이동으로 이주한 프라빈에게 이곳은 마치 신세계와도 같이 느껴졌다.모두 중국어로 표시된 메뉴들과 생활방식들이 낯설었지만 후에 좀 더 보람 있는 생활을 계획하자 완전히 다른 생활 모습과 목표들이 생겼다.프라빈은 ‘아주 바쁘지만 타이동의 이런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준 축복과도 같이 매우 만족스럽답니다.’라고 말했다.인도인은 말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그를 매혹시킨 타이동에 대해 얘기할 때면 마치 타임터널 속에 들어간 듯 편안하고 즐거운 어조로 타이동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감정들을 얘기했다.

타이동 시내에서 정통 인도요리점을 경영한 지는 약 4년이 되었다.입 소문으로 알려진 프라빈의 인도요리는 점점 사람들에게 주목 받게 되었다.‘저는 저의 요리에 정성을 다합니다.왜냐하면 인도요리는 다른 요리와는 달리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인도요리에 대해 말할 때면 프라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그는 인도요리를 만들려면 매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고 요리 시간도 매우 많이 소비된다고 했다.각각의 요리마다 독특한 레시피가 있고 어떤 향료를 쓰고 각각 향료의 양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양이 조금 많거나 조금만 적어도 요리의 맛이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각종 향료 간의 조합 역시 하나의 학문이라고 했다.‘인도요리점을 경영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성껏 만든 맛있는 인도요리를 타이동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예요.’라고 프라빈은 말했다.현재 요리점의 쉬는 날은 일주일 중 이틀이며 쉬는 날에는 즈번온천에 가서 온천욕을 즐기거나 산해철마도에 가서 산책을 하기도 한다. 프라빈은 이러한 생활템포를 너무나 좋아하고 또한 가장 편안한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한다.‘비록 고국 인도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집이 많이 그립지는 않아요.오히려 작년 가족들을 방문했을 때 타이동이 그리워지기까지 했지요.나도 모르는 사이에 타이동을 고향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프라빈은 자신의 생활은 이미 타이동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 원소절에 신명(神明)들이 거리를 횡보하는 행사를 봤을 때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프라빈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이것은 타이동만의 유일무이한 민속 문화로서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특색 축제라고 생각하며 일찍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물어본 결과 다른 국가나 도시가 복제할 수 없는 이러한 문화 축제에 깊은 관심을 표현했다고 한다.타이동 원소절 축제는 다양한 원소와 시각적 색채가 풍부해 이러한 전통 축제를 강화시켜 세계에 홍보한다면 타이동의 인지도가 한 층 더 높아지고 해마다 여러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이 타이동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프라빈처럼 일은 바쁘지만 마음은 바쁘지 않은 충실하고 조용한 생활이 매일마다 그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게 한다.매일 맛있는 인도요리를 만들어 타이동 사람들의 미각을 감동시키고 이러한 열정을 타이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타이동에는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 이 두가지 원소를 결합시키면 마치 천국과도 같아요!’ 타이동에서 거주한 지 8년이 된 프라빈은 타이동에 대한 가장 훌륭한 평론을 내렸다.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고품질의 생활환경이나 마음의 평온을 주는 장소를 찾는다면 타이동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른 양분들을 제공할 것이며 직접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만이 그것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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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비투즈 (恰比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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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예 지역의 우링녹색터널은 길 가에 녹나무와 호주소나무 그늘이 드리워 있어 산책하기에 매우 적합하다.유명한 2626시장이 이 가로수 그늘 아래 성대하게 열린다.그 중에 한 상인이 특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시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부터 마까오(산후추)이탈리아식피자의 향기가 풍겨온다.화덕 앞에서 피자를 열심히 굽고 있는 사람은 흰 수염의 독일인 요하네스(Johannes)다.붉은 얼굴에 미소로 가득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해 보인다.‘저는 타이종에서 타이동으로 이주해 왔답니다.타이동에 거주하기 이전에 아내와 저는 자주 동해안에 여행을 왔었지요.’그는 한 동안 타이종과 타이동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고 일했다.그러는 동안 언젠가는 동부로 이사할 수 있기를 꿈꿨다.‘4년 전에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어요.우리는 바로 타이동의 루예로 이사를 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곳은 정말 멋진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어요.’라며 요하네스는 웃으며 말했다.

구불구불한 타이9선의 종구 지역은 동해안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눈을 들어 바라보면 수확시기가 다른 여러 가지 황녹색 논들이 반듯하게 펼쳐져 있고 가끔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조용히 늘어서 있다.이곳에서는 무더운 한 여름에도 번잡한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힐 수 있다.요하네스는 매일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창문으로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본다.‘루예는 정말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역이에요.이곳에는 좋은 이웃들이 있지요.그래서 더 이상 이곳 저곳을 찾지 않고 루예에서 살기로 했어요.’처음의 임대에서 집 장만에 이르기까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제 아늑한 저의 집이 되었고 더 이상은 방문자의 마음이 아니랍니다.

디지털 디자이너에서 피자와 소스를 파는 요리사로 탈바꿈한 요하네스는 정말 놀라운 인연이라고 말했다.‘처음에는 친구가 롱티엔의 마을 시장에서 판매를 해보라며 초청했어요.하지만 독일 요리는 준비 작업이 너무 복잡해 버섯 소스와 같은 소스들을 팔기 시작했어요.’소스는 예상외로 판매 후의 문의도가 높아 더욱 더 많은 종류의 소스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했다.바로 한 병의 소스에서 시작해 소규모의 단체 예약 손님을 집에서 대접하는 현황에 이르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친한 친구를 대접하는 심정으로 방문한 손님들이 함께 요리할 수 있도록 권한답니다.식재료 준비부터 시작해 식탁에 오르기까지, 요리를 하며 교류하고 함께 완성된 요리를 즐기는 것은 저희들의 이상적인 식사 방식이자 노력해야 할 방향입니다.’라고 요하네스는 말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여러 친구들을 알게 되었지만 요하네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주변의 다재다능한 이웃들이었다.‘제 이웃들은 유기농 야채를 재배하거나 커피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거나 수제 아이스크림을 만들기도 한답니다.우리는 자주 요리나 식재료들을 교환하는데 이런 친절한 이웃들 때문에 저는 매우 기쁩니다.’이곳의 느린 생활템포는 더욱 많은 시간 동안 현지 주민들과 깊은 교류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다양한 문화에 대한 타이동 사람들의 포용력은 독일의 시골보다도 높습니다.’ 그는 ‘만약 명확하게 독일인이 아닌 외부인이 독일의 시골로 이주해 올 경우 그들은 한동안 관찰을 한 후에만 초보적인 교류를 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타이동의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산과 바다는 그것을 감상하고 누릴 수 있도록 모든 방문자들을 환영한다.타이동 사람들의 열정과 친절한 태도가 만들어낸 따뜻함과 만족감은 많은 사람들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이곳을 방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과 어우러져 더욱 더 많은 감동을 창조해 낸다.이점은 요하네스가 걸어온 타이동이라는 꿈의 청사진 속에서 좋은 증거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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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6 시장:

아름답고 쾌적한 풍경 외에도 타이동 소농이 생산한 야채,과일 및 수공예술품 등이 다양하게 판매된다.종구선의 루예향 용안 마을은 현지의 우수한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매월 「짝수」 주(둘째 주와 넷째 주)의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푸르른 우링녹색터널 아래에서 「타이동2626시장」을 개최한다.가로수 그늘 아래서 산책하며 보물을 찾듯 차,커피,수제 과자,수제 케이크,꿀 상품,계절 야채와 과일,문예 창작 수공예술품,환경보호 제품,건강 식초,수공 비누 등 훌륭한 유기농 농특산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Julia & Michael의 미샤 독일 주방(Micha’s Kueche)

Mark

가을은 한걸음씩 다가오고 한낮의 태양이 산 아래로 내려가는 시간에 가끔 미풍이 불어오는 날씨의 타이동 거리를 걷는 것은 일종의 행복입니다. 이곳의 유유자적한 생활은 이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Julia & Michael으로 하여금 점차 타이동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현지에 있는 타이동 사람이나 관광을 온 관광객들 할 것 없이 가장 전통적이고 현지 입맛에 가까운 독일요리를 맛보게 하고 싶어 독일 식당을 정성껏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Michael은 예전에 타이페이에서 회사원이었어요. 타이동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친구가 식당을 개업하라고 열심히 권하고 초청을 해서 일을 그만두고 타이동으로 이사왔어요!」웃으며 이야기 하는 Julia의 목소리는 힘이 있고 쉽게 끌리는 목소리입니다. 이년 전에 독일 국적의 남편 Michael과 미련 없이 타이동으로 이사와 식당을 오픈한 결정은 정말 큰 모험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타이동으로 이사오기 전에는 타이동은 낯선 곳이었기 때문에 오래 전에 Michael과 가족들을 데리고 타이동으로 여행 왔을 때, 교통이 불편하고, 음식은 간식거리는 많은데, 식당은 적은 곳이라는 인상이 있었어요. 」

Julia와 Michael은 타이동에 대한 첫인상이 별로 강렬하지 않았는데 이 곳에 와서 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경영하는 독일 주방은 음식 애호가들에게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옵니다. 식당은 매일 영업시간이 되면 손님으로 가득해서 두 사람은 바쁘지만 또한 그로 인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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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의 고향인 독일 Stuttgart(슈투트가르트)는 독일 6대 공업도시이며 Mercedes-Benz 벤츠자동차의 탄생지입니다. 바라보는 곳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독일이지만 추운 계절이 더 길기 때문에 Michael은 비교적 타이완의 기후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타이동에 있는 산과 바다, 그리고 깨끗한 공기는 예전 타이페이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예전에 식당이 루예(鹿野)에 있을 때 영업시간이 아직 안된 시간에 197현도를 타고 차로 해변에 가서 수영을 하고는 해변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지금은 타이동 시내로 이사 와서 해안선에서 더 가까워 졌어요. 」Julia가 말합니다. 산에 오르고 수영하기를 좋아하는 Michael에게 이곳의 아름다운 환경은 여가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고 휴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평소에 오후 두 세시가 되면 족발요리를 준비하는데 독일식 족발요리는 대량의 향료를 넣고 한 시간쯤 끓인 다음에 또 계속해서 한 시간 정도를 구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드는 요리예요. 」Michael이 바쁘게 주방을 들락날락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겨옵니다.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일 뿐인데도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요리를 다 완성하면 입 안에서 폭죽이 터질법한 요리일 거라고 상상됩니다! 놀라운 그 요리솜씨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쌓인 생활습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아니라 요리에 대한 민감성과 소질도 중요합니다. 「독일 요리뿐만 아니라 여행할 때 특별한 요리를 맛보면 집에 와서 만들어봐요」마이클이 이야기 하는데, 중국어를 너무 잘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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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시골인 타이동에서 Julia가 전통 독일요리를 배우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치즈들과 향신료를 이곳에서는 살수가 없어서 타이페이의 공급업체에서 택배로 받았어요.」 Julia가 말합니다. 하지만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한 손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면 그 모든 노력이 가치가 있게 느껴집니다. 「즐거운 밤에 먹는 맛있는 요리가 가슴 속에 남아야죠. 독일의 맛을 타이동으로 가져와 타이동이 더욱 다원화 되고, 더 멋진 곳이 되면 좋겠고, 타이동에 오는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풍경 외에도 맛있는 요리도 즐기고 가면 좋겠어요.」 이것은 Julia와 Michael의 궁극적인 꿈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입니다.

Patrick Coulter – 패트릭 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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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온 패트릭 콜터는 ‘ 인생은 끝없는 노력의 산물이지 인생에는 기적이란 없다. 사실 모든 것은 무수한 노력과 결단 후에 자연히 완성된 결과이다. ’라고 말했다.그는 타이완 아내 아니타 추와 함께 고추소스 사업을 운영하며 타이동에서 거주한 지 4년이 되었고 그들에게는 1살이 조금 넘은 귀여운 아들이 있다.

4년 전 패트릭과 아니타가 아직 타이종에 거주할 때 2001년부터 그들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요식업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았다.‘우리는 이탈리아 레스토랑,피자 레스토랑,멕시코 레스토랑 등 많은 레스토랑들을 경영했었지요.타이동에서 고추소스를 팔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요. 타이동은 농부들과 직접 협력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지요.’ 패트릭은 웃으면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추소스를 파는 것은 완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말했다.‘처음에 우리는 약간 좌절했어요.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지요.농부들을 끝없이 찾아 다니고 판매상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지만 지금은 드디어 기반이 잡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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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이 만든 고추소스의 주재료는 카리브해의 특수 고추로서 타이완에서 재배되는 고추들과는 다른 품종이다.그렇기 때문에 경영 초기에 협조해 줄 수 있는 농부를 찾아 사방을 헤맸지만 재배하고자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그러다가 한 번은 두란에 있는 페밀리마트에 갔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아니타에게 고추소스를 만들지 않느냐며 그가 시범적으로 재배해 보겠다고 제의했어요.’패트릭은 마치 기회가 다가와 문을 두드린 후 마침내 햇살을 향해 열리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이어서 다른 농부들도 찾아와 동업할 수 있냐며 문의를 해왔다.그들이 만든 고추소스는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생산량도 점점 증가해 작년에는 괌에 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현재는 아마존닷컴(Amazon)에서 판매를 계획하고 있어 판매 시장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패트릭이 아직 타이동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매년 시간을 내어 이곳에 있는 친구를 방문하거난 휴가를 왔다.‘제 친구는 일찍이 타이종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죠.아니타가 이곳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말한 후에야 우리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생각했고 실행으로 옮겼어요.’4년 전의 결정을 되돌아 보며 패트릭은 후회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도시는 비록 편리하지만 어린 자녀를 데리고 대기 오염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타이동으로 이사한 후에 생활 리듬이 느려졌어요.어떤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지요.하지만 저는 새로운 남회고속도로와 현재의 수화개선도로를 매우 좋아한답니다.우리는 자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지금은 더 안전해졌기 때문이지요.’패트릭은 1998년부터 타이완에 거주했는데 지금은 동부에서의 4년 간의 생활 경험이 있어 타이동을 방문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고 했다.‘타이동에서 거주하는 건 마치 나라 안의 다른 나라로 이사한 것과 같아.동부와 서부의 사람들은 생활해 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어.타이동에 들어서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나라를 방문한 것만 같아.’라고 말이다.타이동의 따뜻한 기후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나면 아이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가거나 혼자서 등산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친구가 타이동을 방문하면 함께 등산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추소스 주문이 증가해 여유 시간이 드물다고 한다.그래도 그는 타이동은 야외활동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타이동 방문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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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의 관찰에 따르면 대도시에서 타이동으로 이주하기 원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고 한다.‘만약 정말 이곳으로 이주하기 원한다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해요.타이동 여행객들은 여전히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고 대규모 행사가 끝나면 여행객 수가 매우 줄어들기 때문이지요.’그는 타이동에서 거주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냐는 것이라고 했다.현재 패트릭이 타이동에서 새로운 생활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그는 겸손하게 자신이 행운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또한 아니타와 함께 했던 노력이 타이동에서 생산된 고추소스가 해외에까지 수출되어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타이동의 화끈하고 놀라운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M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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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만일 한 지역에서 10년 이상 살았다면 그곳을 이미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2007년 여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타이동을 방문한 메트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메트가 타이동에 거주한 지는 11년이 넘었다.처음에는 단순히 서핑을 배우기 위해 방문했지만 이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그야말로 타이동 현지인이 되었다.

메트의 고향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해안 지역인 이스트 런던(East London) 지역으로 기후 외에 지리 조건도 타이동과 매우 유사해 고향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타이동의 환경과 사람들은 모두 훌륭해요.솔직히 말해 타이동을 방문한 첫 달에 제가 이곳에 살고 싶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요.’그는 처음 방문할 당시 중국어를 완전히 하지 못했지만 주위의 열정적이고 친절한 타이동 사람들을 알게 된 후 이곳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타이동은 비록 관광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외국인인 저를 보고 계속 물건을 팔려고 하지는 않았어요.그저 단순히 돕고 싶어했죠.정말 놀랍고도 감동적이었어요!’메트는 처음 타이동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졌다.현재 그는 타이동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메트와 그의 친구인 데이브와 퀴니는 아이들이 영어에 대해 더 많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영어 동요(비고1)를 녹음하고 심지어 창작 활동도 하고 있다.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간단한 문구에 귀여운 애니메이션을 접목시켜 영어 시간에 가장 훌륭한 수업 자료로 사용함은 물론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도 공개해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감상 또는 이용할 수 있다.`처음 이 영상들을 제작할 때는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였지만 하면 할수록 흥미가 생겼어요.사실 저희는 이 단순한 생각들이 어디까지 발전해 갈지 알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우수한 많은 영어 영상들을 여러분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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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는 타이동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한다.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동의 산과 바다는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이다.`많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은 비록 해변에 살고 있지만 돈 벌기에 바빠 해변의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가 없어요.하지만 타이동은 슬로우라이프가 너무나도 적합한 곳이지요.일이 끝난 여가시간에는 등산을 하거나 해양활동을 하는 등 여기저기를 돌아볼 수 있고 주변에는 잠시 쉬어가며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정말 많지요.’ 메트는 초록빛이 가득한 삼림공원과 독특함을 지닌 철화촌,산해풍경과 장엄하게 어우러진 산셴타이 등을 특히 좋아하며 작지만 아름다운 미술관은 시간이 나면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곳이라고 했다.`타이동의 학교들은 방과 후에 주민들이 학교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타이동은 마치 천국과도 같이 거주자들에게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든 소중한 안전감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메트는 강조하며 타이동 현정부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타이동으로 이주한 후 메트는 처음에 그의 소원이었던 서핑을 배우게 되었다.뒤이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 그의 삶은 더욱더 충만해졌다.비록 처음에는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될 줄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하루 하루가 감격이 넘치는 메트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며 완벽한 삶을 누리고 있는 저는 정말 축복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비고1:영어 동요 채널Rock a doodle 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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